[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신경학계는 올 한해 치료 패러다임의 대변화가 이뤄졌다. 미국심장협회·뇌졸중협회(AHA·ASA)가 뇌졸중 환자의 혈전제거술 가능 시간을 6시간에서 24시간까지 늘렸고, 뇌전증 치료 분야에서는 의료용 대마가 마약에서 치료제로 탈바꿈했다. 정신건강의학계는 정신건강 관련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자해하는 청소년이 늘면서 이들을 어떻게 진료하고 돌봐야 할지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었고, 재난 트라우마에 대응하고자 재난 심리지원에 관한 교육을 개최하는 등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미국發 혈전제거술 가능 시간 대변화…국내에도 이어질까? 뇌졸중 치료에서는 급성 허혈성 뇌졸중 환자의 혈전제거술 가능 시간에 대변화가 이뤄졌다. 미국심장협회·뇌졸중협회(AHA·ASA)는 지난 1월 '뇌졸중 환자를 위한 조기 관리 가이드라인'을 발표, 혈전제거술 가능 시간을 기존 6시간에서 24시간까지 대폭 확대했다. 파격적인 변화를 이끈 주인공은 DAWN 연구와 DEFUSE-3 연구다. DAWN 연구 결과에 의하면, 증상 발현 후 6~24시간 이내에 MRI 또는 CT로 대혈관폐색 뇌졸중을 확인한 환자군 중 혈전제거술과 표준치료를 병행한 군(혈전제거술군)은 표준치료만 진행한 군(대조군)보다 치료 90일째 mRS(장애예후 평가지표) 점수가 개선됐고 일상생활 의존성 역시 적었다(N Engl J Med 2018;378:11-21). 게다가 DEFUSE-3 연구에서는 급성 허혈성 뇌졸중 환자를 6~16시간 이내에 혈전제거술군 또는 대조군으로 무작위 분류해 치료한 결과, 혈전제거술군의 90일째 기능적 예후가 대조군 대비 의미 있게 개선됐다(N Engl J Med 2018;378:708-718). 미국발 혈전제거술 가능 시간 대변화로 대한뇌졸중학회도 진료지침 개정에 돌입했다. 24시간 이내에 혈전제거술을 시행하면 효과적이고 안전하다는 사실이 입증됐고 미국 가이드라인에서 이를 강력하게 권고하기에 국내에서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데 학계 의견이 모였다. 다만 미국 가이드라인을 국내에 그대로 수용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혈전제거술 가능 시간을 늘림으로써 병원 내 뇌졸중 진료 업무 가중 및 병원 운영에 어려움이 생기는 등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뇌졸중 진료지침은 국내 실정을 고려해 변화를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용 대마 '마약'에서 '치료제'로 탈바꿈 | | | ▲ 에피디올렉스(GW Pharmaceuticals 홈페이지 발췌). |
뇌전증 치료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대마 성분의 뇌전증 치료제가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면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FDA는 지난 6월 대마 성분의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Epidiolex)'를 승인했다. 에피디올렉스는 희귀 뇌전증 일종인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또는 드라벳 증후군을 앓고 있는 2세 이상의 소아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다고 허가받았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지지부진했던 '의료용 대마 합법화' 논의에 가속도가 붙었고, 지난 11월 대마 성분 의약품 수입을 자가 치료 목적에 한해 허용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률 개정을 통해 약품 구입을 희망하는 희귀 뇌전증 환자는 의사 소견을 받아 이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하고, 식약처가 발급한 승인서를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제출해 의약품을 수입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의료용 대마 이슈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촉구해온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가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만 의약품을 공급하겠다는 정부 대책안을 규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의료용 대마를 의약품 등 연구 개발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학계 역시 치료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약물 오남용 및 장기간 안전성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는 상황이다. 정부와 학계 그리고 시민단체가 대립각을 세우면서 의료용 대마 이슈는 장기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대한민국 교육·진료 현장을 휩쓴 '자해 주의보' 올해 국내 교육 및 진료 현장에는 '자해 주의보'가 발령됐다. 온라인에 '자해' 관련 검색이 늘고 SNS를 통해 '자해 인증사진'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자해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해 시작 시기가 점점 어려지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했다. 이에 대한정신건강재단,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등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학회는 주요 학술대회에서 '자해 청소년' 문제를 핵심 논의 주제로 다뤘다. 전문가들은 자해 청소년을 문제아가 아닌 '도움이 필요한 아이'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해는 정서적으로 힘들고 답답하지만 오프라인에서 누군가에게 위로받지 못하면서 이뤄지는 행동으로, 자해 청소년은 자해 인증사진을 SNS에 남기면서 본인의 답답함을 털어놓고 의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자해 청소년은 부모, 담임교사, 상담교사 그리고 정신과 의료진이 함께 힘을 합쳐 돌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이어졌다. 내년에도 자해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계의 노력은 계속된다.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는 자해 청소년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논의하고자 교사, 의료진 등으로 구성된 'SENSI(SEcure Network for Self Injury) 네트워크'를 9월 발족했다. 네트워크는 첫 시작으로 부모와 상담교사가 자해 청소년을 체계적으로 돌볼 수 있도록 이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을 내년 초에 발간할 예정이다. 정부·학계, 재난 트라우마 관리 나서다 세월호, 메르스, 지진 등 대형 재난 후 나타나는 재난 트라우마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와 학계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재난 발생 후 수습과정에서 재난 심리지원에 국가 역할이 강조되면서 지난 4월 국가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열었다. 센터는 약 8개월 동안 권역 중심으로 재난 심리지원에 관한 교육을 개최했고 트라우마 회복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여러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센터는 지난달 종로구 고시원 화재를 경험한 재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회복지원을 위해, 서울시 재난심리지원센터와 '종로 고시원 화재 심리지원팀'을 구성해 전화 및 방문상담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경북 포항 지진을 겪은 재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심리지원도 성과를 거뒀다. 포항 지진 발생 후 대피소에서부터 심리지원을 진행한 결과, 재난 피해자들의 우울증 및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개선됐고 심리지원이 필요한 위험군 비율도 점차 감소했다. 이를 토대로 향후 재난 피해자 관련 코호트를 구축하고 보건소·센터·지역 의료기관의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체계적으로 재난 피해자를 관리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면 세월호 생존학생과 유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은 여전했다. 세월호 생존학생 및 유가족에 대한 정신건강 추적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월호 생존학생은 대학교 입학 후에도 불안 등을 호소했고 유가족은 생존자 가족이나 대조군보다 모든 정신건강 문제가 많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세월호 생존학생과 유가족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추적관찰이 장기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